사마라 스콧(Samara Scott)의 신작 콜라주 시리즈에는 공포가 자욱하게 서려 있다. 벼룩, 대창, 응고된 혈액을 담고 있는 40여 점의 작품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토사물의 발사체처럼 벽에 전시되어 있다. 산성비에 오염된 내장들, 종말론적 대량 독살의 흔적일까? 프린스(Prince)는 하늘에 피가 있을 때 보랏빛 비가 내린다고 했다. 허나, 보라색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주생물학자들이 주장한 보라색 지구설에 따르면 30억 년 전 지구는 거대한 보라색 막으로 둘러싸여 녹색이 아닌 보라색이었다고 한다. 내장과 창자를 암시하는 스콧의 콜라주는 어쩌면 잊혀진 원시 세계의 흔적으로 고대 질식된 지구에서 가져온 견본의 일련일 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전 프랑스 보르도의 CAPC에서 선보였던 대형 공중 설치작업 ‘The Doldrums (2020)’에서 건축물을 골조로 차용하였던 것에서 벗어나, 이번 ‘퍼플 레인’에서는 비즈 고리, 은박지, 심카드, 보푸라기 등을 비롯한 화학적인 화재와 연기 색을 띠는 다양한 물질을 유리판 또는 셀로판 위에 부착하였다. 가스가 찬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가방 밑또는 주머니 솔기에 붙은 피복에 더 가깝다. 이번 콜라주는 조셉 코넬(Joseph Cornell)의 쉐도우박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코넬의 작품이 빅토리아 시대의 장식품을 배치하였다면 스콧은 잔여물과 쓰레기, 무형태로 부패해 다른 세계와 다른 차원으로 흘러가도 전혀 이상하고 비현실적이지 않은 것들을 다루었다.
주머니를 닮은 작업은 에로틱한 면모를 풍기는데 이는 종종 가슴이나 사타구니 부근에 자리잡아 오래전부터 위험을 암시하는 원천이 된 주머니와 닮았기 때문이다. 투명 아크릴 상자에 액체 단면을 담았던 ‘Marshes’ 시리즈 (2019-21)에서처럼 이번 작업은 액화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축축이 젖어 보인다. 유리는 안개로 얼룩졌고, PVA 접착제는 폴리에틸렌 봉투를고정한다. 스콧의 작업에서는 일시적 소멸, 실신과 같이 어딘가 무디고, 포스트 오르가즘적인 혼란이 발견된다. 일부 작업에서 작가는 빨간 발포고무에 분수구와 같은 길고 얇은 구멍을 내었는데 분수구처럼 구멍을 활짝 열지 않을뿐더러 유혹의 여지 또한 남기지 않는다. 작가 스콧은 맥시멀리스트이다. 음부를 연상시키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그림 속 주름처럼 작품 속엔 거품이 보글거리는, 현기증 나는 분홍색의 바로크적 요소가 진동한다.
다른 작업은 눈에 띄게 가정적인데 비틀어진 인형의 집과 흡사하며, 화재에서 구한 폴리 포켓의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 방은 발포고무로 구분되어 있고 그 아래로 분홍색과 보라색의 세계가위치한다. 이 세계는 분홍빛의 양말, 케이크링, 비즈와 고깃덩어리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이 공간이 가정적 공간이라면, 이는 분명 사디스트의 집일 것이다. 강박적으로 저장된 물건들이 셀로판지 밑에서 질식당한다. 난도질 된 침실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철재 밀실(cell)의 기괴함을갖고 있다. 어떤 세상이 되었든, 그 안의 사물들은 약과 진정제를 투여 받고 흉측한 빛으로유배되어 있다.
스콧의 작업에 관한 소피아 사마타(Sofia Samatar)의 단편은 저장강박증 남자가 ‘인피니티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스페이스 미션에 참여하며 지구를 떠나는 내용을 그린다. 남자는 깨끗한 세상을 찾아 우주를 떠다닌다. 스콧의 콜라주에서 보이는 이질적 물질은 마치 주기율표의 원소가 독색으로 가려진 것처럼 우주의 잔해인 것만 같다. 일부 작업에서 작가는 구를 발포고무로 잘라 행성과같은 모양을 나타내고자 했다. 발포고무는 모조진주 색으로 얼룩졌고 구에는 검은 테두리가 있어마치 탄 것처럼 보인다. 행성 안은 대리석 모양과 사틴 같은 고급 천처럼 화려해 보이지만정작 화장실 휴지, 셀로판 테이프, 기저귀 따위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스콧이 폭로와추상 사이의 극명한 길을 스쳐 지나가듯 이 또한 포털이자 신기루이다. 색과 모양의 소용돌이로 탄생한 새로운 형태는 곧 불가능한 환영의 부유이자 대기의 효과이다.
사마타의 이야기 속 화자는 저장강박증자의 우주 탐험을 상상하지만, 정작 그녀는 폐차장과 실버타운을 맴돈다. 매연으로 가득 찬 지구는 장례식의 한 가운데 있어 보이는데, 깨끗한 세상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걸까? 질식되어 죽어가는 것들을 스콧은 한데로 모아 유리 밑에 봉인하며 상실에 대한 공포를 시사한다. 작가의 콜라주를 통해 우리는 작가에 의해 인피니티 프로그램에합류한 듯한 사물의 후퇴를 목격한다. 은색 우주왕복선에 실려 우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주머니에 봉인되어 액화수소가 아닌 화학액과 고착제에 의해 시간을 관통한다.
밀봉된 주머니는 끈적거리는 관처럼 채워져 꼭 억지로 벌린 꼬막이 그 추잡한 전리품을 과시하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약 이것들이 관이라면, 열린 관일 것이다. 셀로판 표면은 숨죽여 볼 수 있는 핍홀이 되고 스콧의 작업은 장의사가 시체에 화장을 입히는 것처럼 망가진 사물을 고이 여겨 광택제와 증점제를 입혀준다. 프린스는 ‘퍼플 레인’을 항상 공연의 마지막에 불렀다. 그리고 그가 노래를 부를 때면 보랏빛 무대 조명에 비친 유색 비가 내렸다. 스콧의 작업 속 물체는, 그들의 마지막무대에 섰다. 고딕양식이 낭만주의에 길을 내어준 것처럼 끈적이는 물질 사이로 떨어진 꽃잎이 드러난다. 한 작업에서는 왁스 조각과 재 덩어리가 한데 엉켜 압화로 말린 장미나 구멍처럼 나타난다. 스콧의 작업에서 보살핌의 행동은 폭력의 행동과 혼돈된다. 사랑은 거대한 보라색 막이다, 그아래로 세상은 스스로 양육하고, 침투하며, 피어나고, 시든다.
이자벨라 스콧 (Izebella Scott)
2022년 8월